노동환경건강연구소 '영수증 BPA 분석결과'
‘비스페놀A(BPA)’ 성분이 들어가지 않은 감열지를 쓴 종이 영수증. 양다영PD
‘친환경 용지’ 표기된 44종서
규제 강화된 BPA 검출 줄고
구조 유사한 BPS 대폭 늘어
생식기능 장애 등 독성 유사
1개 마트 영수증, 유럽의 50배
국제 수준 ‘BPS 규제’ 나서야
대형 프랜차이즈 음식점인 A사에서 발행하는 종이 영수증에는 ‘BPA(비스페놀A) Free 친환경 감열지’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B대형마트에서 발행하는 영수증에도 ‘친환경 영수증(BPA 프리)’이라고 쓰여있다. 내분비계 교란물질(환경호르몬)인 BPA 성분이 포함되지 않은 감열지를 쓰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BPA 성분이 없다고 ‘친환경’은 아니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국내 관공서와 각종 프랜차이즈 업체 등에서 발행하는 영수증을 분석한 결과, 86.3%의 영수증에서는 여전히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 BPA가 이슈가 되자 BPA 검출률은 감소한 대신, 그와 유사한 성분인 ‘비스페놀S(BPS)’의 검출이 늘어난 사실이 확인됐다.
경향신문은 27일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금융산업공익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달 초 수행한 ‘영수증 BPA 분석결과’ 자료를 확보해 살펴봤다.
연구소는 영수증을 발행하는 기관들을 관공서와 병원, 은행, 국내·외 프랜차이즈, 대형 및 소형 마트, 배달 등 8개 카테고리로 세분화한 뒤 총 51개 영수증을 확보해 분석을 진행했다. 분석결과 51개 중 44개 영수증(86.3%)에서 BPA 혹은 BPS 성분이 검출됐다. 관공서와 병원 번호표, 배달 영수증에서는 100% BPA나 BPS가 나왔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분석한 카테고리별 BPA, BPS 검출률. BPS 검출률이 BPA보다 확연히 더 높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제공
■ BPA는 줄었지만 BPS가 급증
눈에 띄는 점은 BPA 검출률은 대폭 줄어든 대신 그와 비슷한 물질인 BPS 검출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국내외 프랜차이즈 영수증 11개 중 BPA가 검출된 영수증은 하나도 없었다. 대신 11개 중 9개 영수증에서 평균농도 0.4~0.6%의 BPS가 검출됐다. 대형마트에서 수거한 영수증 6개에서도 BPA는 검출되지 않았고, 평균농도 0.61%의 BPS만 나왔다. 2015년 연구소가 여성환경연대 의뢰로 백화점과 마트 영수증을 분석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조사를 진행한 김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은 “당시엔 80%의 시료에서 BPA가 검출됐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BPA가 13% 정도 밖에 검출되지 않았고 70~80%는 BPS가 차지하고 있다. 역전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이 종이 영수증 BPA 실험을 위해 영수증을 잘게 자르고 있다. 양다영PD
BPA는 정자 수 감소와 같은 생식기능 장애와 생식기 자체의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내분비계 교란물질이다. 최근에는 비만이나 당뇨, 아토피 피부질환이나 어린이들의 과잉행동장애(ADHD)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고온에 강한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는 BPA는 예전엔 수유병 소재로 쓰였지만, 지금은 어린이 제품에는 BPA를 쓸 수 없게 안전기준이 강화됐다. 하지만 국내에는 어린이 제품 외 다른 곳에서의 BPA 사용에 대한 규제는 별도로 없다. 김 실장은 “환경호르몬이 시민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일반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지면서 시장에서도 친환경 이미지를 위해 BPA 사용은 줄이고 있지만, 대체제로 BPS 사용이 늘고 있다”고 했다.
김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 팀장이 지난 15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사무실에서 실험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양다영PD
■ “BPS, BPA와 거의 동일…해외서도 우려”
그렇다면 BPS는 안전한 것일까.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두 물질의 구조는 거의 유사하다. 김 실장은 “두 물질은 거의 동일한 물질이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BPS가 갖는 독성이 BPA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우려하고 있다”며 “국제적으로는 BPS도 규제해야 한다는 흐름이다. BPA가 없다고 ‘친환경’ 이라고 하는건 논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BPA, BPS 농도는 어느 정도가 되어야 유해한 것일까. 그는 지난해부터 BPA의 감열지 사용을 규제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의 기준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유럽의 BPA 기준은 200ppm 이다. 이번 분석 결과 중 1개 마트에서 BPA 농도가 1%로 나왔는데, 이는 유럽 안전 기준의 50배에 달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스위스는 지난해 BPA에 이어 BPS에 대한 규제도 도입했다. 이번 연구에서 검출된 BPS의 평균 농도는 0.5~1% 정도다. 그는 “영수증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스위스) 기준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했다.
‘BPA 프리’를 ‘친환경’으로 홍보하고 있는 영수증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조사 결과 BPA가 검출되지 않은 영수증에서도 BPS 성분은 대부분 검출됐다. 양다영PD
김 실장은 “최근 유럽의 시장조사에서도 BPA를 규제했더니 감열지 시장의 62% 정도에서 BPS를 사용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BPA만 규제된 상태에서 BPS 사용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고, BPS도 BPA와 동일한 수준에서 규제돼야 한다는 내용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국내에서도 더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 실장은 “내분비계 교란물질은 BPA 외에도 100여개가 더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수증을 많이 취급하는 직업군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규제가 필요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기회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원문 : [단독]당신 손에 쥔 영수증, ‘친환경 종이’ 아니다 - 경향신문 (kh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