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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제로 5일 버텼어요...응급실엔 갈 수 없으니까요" 미등록 이주아동 아파도 참는 아이들

작성일
2022-01-04
조회수
3634
"진통제로 5일을 버텼어요…응급실엔 갈 수 없으니까요."  
미등록 이주 아동 ' 아파도 참는 아이들'

갑자기 심각한 복통을 느낀 A 양. 응급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통증이 심각했지만 병원을 간다는 건 꿈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근처 약국에서 진통제를 산 뒤 집으로 향했습니다. 늘 그렇듯 아프니까 진통제를 먹었고, 꼬박 닷새를 버텼습니다. A 양은 아프면 이런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과연 얼마나 갈까? 이번엔 진통제로 버틸 수 있을까?" 

저희가 A 양을 만난 곳은 서울 중랑구에 있는 녹색병원에서였습니다. A 양은 부모님이 미등록 이주 노동자 신분이어서 '국적 불명' 상태로 지내야 했던 이른바 '미등록 이주 아동'이었습니다. A 양 같은 이주 아동·청소년은 말 그대로 '미등록', 행정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존재입니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외국인 등록은커녕, 출생 신고조차 되어 있지 않은 이들에게 의료보험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주 간단한 치료도 일반인의 몇 배, 혹은 수십 배를 내야 하는데, 이들의 경제적 형편은 사실 넉넉하지 않습니다. 사소한 질병에도 신분이 불안해서, 또 병원비가 걱정되어서 병원을 갈지 말지 걱정해야 하는 게 이들의 일상입니다. 

몽골 국적의 미등록 이주 아동인 아누카 양도 아프면 일단 참는다고 했습니다. 병원에 쉽게 갈 수 없는 사정을 깨닫게 된 후부턴 어지간한 통증은 부모님에게도 쉽게 알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발목이 삐어서 한 일주일 동안 못 걸었어요. 힘든 상황이었는데 병원을 못 가고 집에서 치료했어요. 지금도 조금씩 아파요. (하지만) 여유가 없어가지고요. 엑스레이를 찍는 것만 해도 한 70만 원이 나오더라고요. (아빠, 엄마한테는) 말을 잘 못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의료 취약계층인 이들의 처지가 더욱 열악해졌습니다. 코로나19 전에는 보건소가 적어도 영유아에 대한 필수 접종은 제공해왔는데, 그마저도 삐걱대고 있는 겁니다. 1살, 3살짜리 미등록 아동을 키우고 있는 한 몽골 어머니는 코로나19 이후로는 보건소에서 접종을 할 수 없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경기도 포천의 가구공장에서 일했던 남편은 일거리가 줄어서 최근엔 이삿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루 벌이가 아쉬운 상황에서 몇만 원하는 주사 비용조차 부담이 되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녹색병원처럼 소수의 민간 병원·단체가 이들에 대한 의료 지원사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녹색병원은 금융산업공익재단에서 기부받은 1억 원으로 오는 4월까지 미등록 이주 아동 및 청소년에게 1인당 최대 200만 원을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문의는 녹색병원 사회복지팀 ☎ 02-490-2180.)



임상혁 녹색병원장은 "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맹장 수술하면 한 20-30만 원 정도 돈을 본인 부담금이 나가는데, 이 아이들은 한 200-300만 원 나가거든요."라고 설명했습니다. 의료보험이 안 되는 만큼 이 지원금 200만 원도 부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임 병원장은 이 사업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인데요. 아이들에게 외국인 애들에게 우리가 이런 서비스를 해준다고 그러면, 어머 왜 우리 국내 애들도 못 하는 걸 왜 해줘, 뭐 이런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가끔 있어요. 제일 중요한 건, 우리가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라고 그러잖아요. 정말 이 아이들은 우리 전 세계를 앞으로 바쳐야 될 보배 같은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면서 생각을 좀 달리해보자고 했습니다.

"이런 어린이들에게 한국에서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의 사회적인 서비스, 그런 혜택 이런 것들을 준다면 이 사람은 훌륭한 한국을 홍보하는 사람들이 될 거고, 또 우리나라를 더욱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될 거예요. 차별하지 말고 정말로 어린이의 권리로서 우리가 이런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습니다. 이미 30년 전에,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권리가 있고 치료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선언한 것입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24조 (자료 : 국가인권위)

1. 당사국은 아동이 최상의 건강 수준을 유지할 권리와 질병 치료 및 건강 회복을 위한 시설을 이용할 권리를 인정한다. 이와 관련해 보건의료 서비스 이용에 관한 아동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2. 당사국은 이 권리의 완전한 이행을 추구해야 하며, 특히 다음과 같은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가. 영아와 아동 사망률을 낮추기 위한 조치 

나. 기초 건강 관리 증진에 중점을 두면서 모든 아동이 필요한 의료 지원과 건강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조치

출처 : SBS 뉴스 김아영 기자


기사 원문 : "진통제로 5일을 버텼어요…응급실엔 갈 수 없으니까요" |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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