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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함께하는 사랑방)

ESG 시대의 기업 사회공헌

작성일
2024-04-01
조회수
1256


이종익
한국사회투자 대표/최고투자책임자



(이 기고는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필자 소속기관인 한국사회투자와 금융산업공익재단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음을 먼저 밝힙니다)

최근 우리사회의 변화는 그 속도가 유례를 찾아볼수 없을 정도로 매우 빠르다.  Chat GPT를 위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출현은 우리 삶을 급속히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 전문직으로 각광을 받던 기자, 통역사, 회계사, 전략전문가, 개발자와 같은 고급 일자리가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또한 글로벌 기후문제로 인해 온실가스 감축이 의무화되면서 자동차, 철강, 조선, 화학, 정유 등 그동안 우리나라 대기업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업종은 급속히 저수익 업종으로 바뀌고 있다.

이와 함께 기업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최근 애플의 주가는 맥을 못추고 있다. 이는 애플이 자본시장에서 더 이상 가치성장 기업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때 혁신의 아이콘으로 대표되던 애플도 유럽,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반독점법 위반으로 궁지에 몰리고 있다. 내놓는 신제품마다 세상을 놀라게 하면서 세계 시장을 선도했지만, 폐쇄적인 애플만의 생태계가 결국에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혁신의 아이콘이 혁신의 훼방자가 된 꼴이다.  

한 때 우리나라 국민기업으로 불리던 카카오도 침체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소상공인 업종까지 문어발 확장으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기도 하고, 올바르지 못한 경영 방식은 계속 문제가 되고 있다. 자회사 경영진이 상장 즉시 보유주식을 매각하여 막대한 차익을 챙겨 많은 주주의 원성을 듣기도 했다. 최근에도 매출을 고의로 부풀린 분식회계로 금감원으로부터 과징금 부과와 대표 해임권고를 받기도 하였다.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거시적 환경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해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치 못해 발생되는 피해의 규모도 크게 확대되고 있다. 이런 기업환경에서 기업은 어떻게 경영을 해야 할까? 또한 이런 상황에서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와는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특히 사회공헌은 어떻게 해야하며 ESG 대응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의문에 답하고자 ESG 환경하의 기업경영과 사회공헌에 대한 얘기를 해 보고자 한다.

기업은 고객의 문제, 더 나아가서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파는 일을 한다. 라면 회사는 고객의 배고픔을, 화장품회사는 고객의 미용 욕구를, 통신 회사는 좀 더 편한 소통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므로 기업은 기업이 속한 사회의 문제와 가치에 민감해야 한다. 아울러 어떤 솔루션이 가장 효과적일 지를 고민해야 한다. 사회가치와 사회문제는 시대에 따라 계속 바뀌고 있다. 6,70년대가 기본적인 생존권 문제, 8,90년대가 부의 분배의 문제였다면 현재 중요한 문제는 무엇일까?

2015년 당시 미래부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2030년 예상 사회문제를 보면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당시 국민들은 15년 뒤에 기후변화, 사이버범죄, 저출산 초고령사회, 고용불안 등이 중요한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이런 문제들은 이미 우리사회에 중요한 문제임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정기적으로 사회문제를 분석해서 어느 문제에 집중할 지 결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느덧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가 된 ESG라는 용어는 2004년 UN Global compact 보고서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UN은 한 발 더 나가 2006년도에 책임투자원칙(PRI)을 발표해서 투자자들의 ESG 책임을 강조하였다. 이후 ESG는 투자생태계, 기업경영은 물론이고 국가경영의 핵심 키워드로까지 확장되어 왔다.  ESG 이전에도 윤리경영, 지속가능경영, 녹색경영과 같은 말은 계속 사용되었다. 하지만 기업의 비리, 갑질을 비롯한 다양한 사건들이 터지고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ESG가 급속히 부상하였다. 최근 몇 년동안은 그야말로 ESG 전성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이후 미국 투자업계를 중심으로 기업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ESG라는 용어를 사용치 않겠다고 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정치권과 산업계에서는 지속가능성이나 탈탄소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용어가 어떻게 바뀌더라도 ESG가 추구하는 가치는 계속 업그레이드 될 것으로 판단된다. 산업이 고도화되고 경제 구조가 바뀔수록 인간의 욕구와 사회의 압력도 계속 증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기업의 사회공헌과 ESG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정의를 분명히 하고 이에 맞는 추진전략이 필요하다. 둘 다 공익적인 사회가치를 추구하지만 속성과 재원 등 방법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사회공헌은 기업의 영업이익이 주요 재원이다. 기업이 고객에 제품/서비스를 팔고 거둔 영업이익의 일부를 고객이 속한 사회의 문제해결과 가치증대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공헌 사업은 고객이나 고객이 속한 사회를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기업 경영이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축소된다.

ESG의 개념을 한 번 살펴보자. 기업을 비롯한 정부, 비영리기관, 언론 등 모든 경제 주체들은 각기 사회에 영향을 끼친다. 기업은 고객, 종업원, 협력사, 주주, 지역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다. ESG는 기업과 다양한 이해관계자간에 합의된 가치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ESG활동은 환경, 사회, 거버넌스 영역에서 이해관계자와의 사회적 합의를 준수하는 활동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진공청소기를 제조 판매하는 기업이 있다고 가정하자.

회사는 직원에게 적절한 보상과 근로환경을, 협력업체에게는 공정한 계약과 합리적인 공급조건을, 소비자에게는 친환경, 저전력, 고기능의 제품을 주주에게는 투명한 거버넌스, 소통, 배당을 해야 한다. 이와같이 기업이 ESG를 잘 수행하려면 회사 모든 가치사슬에 ESG 요소를 적용시켜야 한다. 또한 ESG의 근간이 되는 이해관계자와의 합의는 시대의 발전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되고 고도화된다. 그래서 ESG경영을 제대로 하려면 꾸준하게 조직과 프로세스를 개선해야 한다.

한마디로 사회공헌이 비용의 성격이라면 ESG는 원가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ESG경영을 잘 하는 기업일수록 원가가 증가되게 마련이다. 이윤창출은 기업의 기본이다. 그래서 ESG를 잘 하는 기업은 대체로 경영을 잘 한다. 연구개발 부터 공급망까지 모든 가치사슬 전체에 걸쳐 혁신을 이루어야 ESG를 잘 하면서도 이윤창출이 가능하다. 이러한 ESG의 특성으로 ESG경영을 한 번 도입하면 다시 과거의 경영 방식으로 회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제는 많이 알려진 의류기업인 파타고니아는 ESG 경영을 잘하는 대표 기업으로 평가된다.  파타고니아의 미션은 지구의 환경을 지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업전략, 모델, 상품기획, 생산/유통, 고객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전 부문에서 ESG 경영을 내재화하고 있다. 면화로 만든 옷이 폴리에스테르로 만든 옷보다 환경에 더 해를 끼친다라는 것을 확인한 후, 재생 플라스틱으로 만든 원료를 주 소재로 사용한다. 자기 회사 제품을 사 입지말고 입던 옷을 수선해 입으라는 광고는 너무나 유명하다.

ESG 경영은 대표의 생각으로 부터 소비자 소통까지 모든 사업 프로세스에 반영되어야 한다.  쉽지 않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ESG가 내재화된 기업은 높은 시장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위험 대응이 신속하게 이루어져 사업의 지속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그렇다면 ESG를 잘 하면 사회공헌은 필요가 없을까? 아니다. 모든 기업이 ESG경영을 하는 세상이 도래하더라도 우리사회의 소외된 영역은 계속 생겨난다. 사회공헌은 이런 부분에 집중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나금융그룹의 사회공헌은 이런 면에서 좋은 모델이 아닌가 생각한다. 회사는 매년 UN SDG 분류에 맞춰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중대성 평가를 실시한다. 이를 통해서 매년 집중할 사회공헌 분야와 주제를 정한다. 분야가 정해지면 핵심 수행과제를 회사 별로 정하고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이후 분야별로 사회공헌 사업을 가장 잘 수행할 역량을 가진 비영리기관 등 전문 중간지원조직과 함께 KPI와 세부 프로그램을 확정하고 실행한다.

기업 내부 구성원이 직접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법은 구식이다. 사회공헌사업 목표와 KPI가 설정되면 이해관계자 및 전문기관이 함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한다. 분야 별 전문기관은 전문성을 발휘하여 프로그램 성과를 높이고 이를 통해서 전문성이 계속 증대된다.  기업과 정부, 중간지원기관 (NGO/NPO), 스타트업이 상호 협력하여 사업화 지원 서비스(Open Innovation) 방식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사회문제의 복합적 해결(Collective Impact), 소셜기업에 대한 임팩트투자, 글로벌 협력 모델 등 방식도 활용된다.

매년 임직원들이 참여하여 독거 어르신 밀집 거주 지역에 연탄배달 행사를 하는 대기업이 있다. 이러한 행사는 직원들에게는 사회문제 해결 직접 참여라는 경험을, 취약계층에게는 경제적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기업은 좀 더 복합적이고 어려운 사회문제 해결에 매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양한 전문기관(NGO,소셜벤처등)들과 협력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 기업이 임팩트를 더 크게 키울 수 있는 사회공헌 사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협력사 보호 및 육성을 위한 저리 금융서비스 제공(협력사 설비, 원재료 매입 자금 등)
■ 낮은 신용도를 가진 플랫폼 입점 소상공인 보호 및 육성을 위한 대안신용평가 모델(비 금융정보에 의한 신용평가) 적용 지원(입점 조건, 상품매입, 대금지불 등 거래 조건)
■ 장애인, 환자 등 이동약자 이동권 확대를 위한 보험료 지원(이동 수단, 프로그램 공유 등)
■ IoT를 활용한 소방/안전 기기 개발 스타트업과 오픈 이노베이션(기업의 자원을 투입해서 새로운 혁신 기술을 개발하고 공동 판매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 마을 에너지 생산설비(신재생에너지) 지원을 바탕으로 번 자체 수익 기반 마을노령연금 지급
■ 법률약자를 위한 모바일 무료법률서비스 벤처에 대한 투자 및 사업 협력
■ 혈소판, 혈장 등 헌혈을 더 쉽고 편리하게 촉진하기 위한 무료 공공앱 개발 지원
■ 청각장애인을 위한 AI 기반 수어, 문자서비스 플랫폼 구축 및 무료 개방
■ 조기퇴직 중장년 귀향 숙박 및 스타트업 취업 연계
■ 낙도 청소년들을 위한 미래 모빌리티 교육 제공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는 1706년 ‘돈의 사용법’ 이란 설교를 통해 정당하게 돈을 버는 방법을 설파했다. 그는 “돈을 맘껏 벌어라. 그렇지만 자신들의 영혼, 정신, 육체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영혼, 정신, 육체에도 해를 입히지 않도록 아주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환경을 파괴하거나 근로자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방식으로 돈을 버는 것을 금지한다.” 라고 말했다. ESG 시대, 기업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내용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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