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사회’의 사회학
- 작성일
- 202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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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21세기에 들어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눈에 띠는 사회학적 현상 가운데 하나는 ‘나 홀로 사회’의 도래다. 통계가 이를 잘 보여준다. 행안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우리나라 인구 중 혼자 사는 1인 세대는 1,002만1,413세대로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2,400만2,008세대의 41.8%를 차지했다. 열 세대 중 홀로 사는 세대가 네 집이 넘으니 우리나라는 이제 ‘나 홀로 사회’로 들어선 셈이다.
나 홀로 세대에서 주목할 것은 연령 구간에서의 규모와 비중이다. 먼저 그 규모에서 60대(60∼69세) 1인 세대는 185만1,705세대로 가장 많았다. 30대(30∼39세)는 168만4,651세대, 50대(50∼59세)는 164만482세대를 기록했다. 한편 연령층 인구 비중도 염두에 둬야 한다. 3월 말 기준 60대 인구가 769만 명, 30대 인구가 656만 명임을 생각할 때, 30대 가운데 혼자 사는 이들의 비중이 60대의 비중 못지않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에 들어와 지구적 차원에서 나 홀로 사회의 경향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그 원인은 여럿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대, 이혼·별거로 인한 가족 해체, 고령화에 따른 노인 독신가구의 증가, 그리고 젊은 세대의 비혼·만혼 추세의 강화 등이 주요 요인이었다. 이처럼 그 원인이 경제적 상황, 인구 변동, 개인주의 문화 등 다양한 만큼 나 홀로 사회가 직면한 사회 문제들 역시 다양하다. 1인 세대의 빈곤·일자리·안전 등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어느 나라든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회학적으로 나 홀로 사회의 도래는 인류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가족이라는 제도가 쇠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구 사회든 우리 사회든 앞서 지적했듯 점점 증가해온 1인 세대의 비중은 그 단적인 증거다. 문제는 이러한 나 홀로 사회를 어떻게 볼 수 있느냐다. ‘나’라는 존재의 부상과 ‘우리’라는 가족의 쇠퇴를 하나의 잣대로만 평가하기 어렵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나 홀로 사회의 그늘이 먼저 눈에 들어오겠지만, 개인을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나 홀로 사회의 불가피성이 먼저 수긍될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나 홀로 사회에 대한 성찰적인 태도다. 나 홀로 삶은 분명한 자유로움과 만족감을 안겨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쓸쓸하고 고독한 삶이다. “우리는 각자 존재하고 나는 홀로 소멸한다”. 나 홀로 사회에 대한 사회학적 관찰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이다. 혼자 살아간다는 쓸쓸함은 사회적 고립을 강화시키고, 삶에 대한 두려움을 증가시킨다. 이러한 고립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개인주의의 행진을 그렇다고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다. 특히 청년세대의 경우 그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바로 이점에서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과 공동체의 공존을 어떻게 모색할 것인지가 점점 더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다루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는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다. ‘따로’ 그리고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일궈가야 할 과제를 우리 사회는 안고 있다고 봐야 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나 홀로 사회가 거역하기 어려운 시대적 흐름이라면 이에 대한 국가와 시민사회의 대응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국가와 시민사회는 나 홀로 사회의 공고화에 대응해 사회·경제적 삶의 질을 개선할 사회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주거·일자리·안전 등 1인 세대를 위한 맞춤형 정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과제에 더해 개인적 대응도 중요하다. 나 홀로 사회에서는 자기 삶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자아의 성찰적 능력이 배양돼야 한다. 또 훼손된 공동체적 유대를 회복할 수 있는 시민문화의 역량이 증가돼야 한다. 개인적 차원에서 자아의 성찰적 힘을 기르고 사회적 차원에서 연대의 시민문화를 일구는 시민교육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추진해야 한다.
시대의 변화를 거역하기 어렵다면 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21세기 현재, 나의 욕망, 이익, 가치를 선행하는 것은 없다. ‘나’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의 욕망, 이익, 가치가 배타적으로 추구된다면 ‘우리’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사회의 다른 이름이 ‘각자도생’ 사회다. ‘나’와 ‘우리’의 생산적 공존을 추구하는 새로운 삶을 어떻게 일궈 가느냐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