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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함께하는 사랑방)

태정(怠政)과 우환의식

작성일
2024-12-20
조회수
548

이강범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황순원 선생의 소설이 생각난다. 대학 시절에 읽어 5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지라 어렴풋한 기억 속에 조각조각 흩어졌지만, 남아 있는 한 조각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한 광부가 갱도에 들어갔다가 갱도가 무너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 혼자 밖으로 나왔는데,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갱이 무너지는 바람에 적지 않은 동료가 매몰되고 만다. 그렇게 혼자 살아남은 사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왜 혼자만 몸을 피했는지에 대해, 갱도에 버팀목으로 세워둔 비틀린 갱목 틈에서 나는 송진 냄새가 평소와 묘하게 달라 이상함을 느껴 홀로 나왔다고 독백했던가?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동네 아낙네의 원망이 이어질 수밖에. “아이고, ○○아버지! 나오실 때 우리 ◇◇아버지도 데리고 나오지 그랬어요.” 이후 이야기 전개가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황순원 소설을 소개하고자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상상을 보태보기로 한다. 만약 이 광부가 동료들을 다 이끌고 나왔다면? 당연히 마을 사람에게 오랫동안 생명의 은인으로 떠받들어지며, 그 마을의 전설로 남았을 것이다. 갱도가 ‘때맞추어’ 무너졌다면 말이다. 그런데 무너지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도 생명의 은인은커녕 일당이 깎이게 된 동료들의 원망에 더하여, 회사로부터 심한 질책은 물론, 해고당하거나, 심지어 손해배상 책임까지 뒤집어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머뭇거림이 없지 않았을 터이지만, 결국 이 사내는 오랜 시간 감내해야 하는, 혼자 살아남는 불행을 선택하였다. 


  자, 이것을 국가로 확대해 보자. 미래를 읽어 내는 예지력과 깊은 통찰로 나라가 곧 존망의 갈림길에 서리라는 것을 읽어 내었다 치자. 그런데 그 즉시 큰 목소리로 온 나라에 경보를 발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예지력은 예지력이고, 이를 소리치는 용기는 왕왕 전혀 다른 차원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설사 용기를 내어 목이 터지라 외친다 해도, 들어야 할 사람이 귀를 막고 있으면 그냥 악다구니 소음으로 끝난다. 그래서 난리 조짐을 미리 읽고 식솔들을 이끌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화를 면했다는 지혜로운 노인의 전설에 누구도 개인과 가족의 안위만을 살핀 행위라고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IMF’라고 부르는, 1997년의 경제위기에 휩쓸리기 전야에도 정부의 경제 부처 책임자들은 ‘펀더멘탈이 튼튼하다’는 노래를 반복해 부르고 있었다. 당연히 경고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이 사실 적시와 함께 경고를 담은 보고서를 썼다가 문책인지 강등인지를 당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불가항력이었다는 변호도 있지만, 경고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처음엔 태연한 척하다가, 다시 허둥거리다가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결국, 당시로는 이름도 생소한 IMF의, 이름도 유별난 깡드쉬 총재에게 나라의 곳간을 샅샅이 검사받으며 야단까지 맞는 치욕을 당했다. 길게 보면 ‘IMF’가 구조조정의 좋은 기회가 되어 경제 재도약의 발판이 되었다거나, 온 국민이 장롱 속 금을 내놓아 전 세계를 감동하게 했다는 얘기 등으로 위로하기에는 소시민들이 받은 상처가 너무나 컸다. 


  한국에도 번역 소개된 레이황(黃仁宇)의 『1587, 아무 일도 없었던 해(A Year of No Significance, 萬曆十五年)』는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명나라 만력제는 우리에게도 제법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명장인 이여송(李如松)이 이끄는 대부대를 보내 적극적으로 참전해 준 ‘고마운’ 황제이지만, 길고 긴 중국 역사에서 그는 보기 드문 혼군(昏君)이다. 가장 유명한 것이 재위 48년 동안 조회, 그러니까 국무회의에 나가지 않은 기간이 20년에 이르러, 역사상 최악의 게으른 황제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 역사에서는 만력제의 ‘태정(怠政, 태만한 정치)’이라고 부르는데, 혹자는 ‘태정’ 기간이 무려 30년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제발 대신들 앞에 나와 정사를 돌보시라고, 재상이 대전 앞뜰에서 며칠 동안 엎드려 주청하느라 탈진해도, 결국 내시가 나와 ‘이제는 그만 집에 가시라’는 황제의 말만 전달하고 들어갔을 뿐이다. 그래서 새로 임명된 고급관료가 황제의 얼굴을 모르는 사태까지 일어나도 황제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럼 국정은? 이런저런 논의는 다 생략한 채, 황궁 안팎을 뛰어다니는 내시만 바빴다. 황제는 매일 같이 후궁에서 술을 마시고 질탕하게 여색을 즐겼을 뿐이다. 그래서 양쪽에서 내시가 배를 받쳐 주어야 걸어갈 수 있었고, 어머니 이(李) 태후에게 문안 올릴 때도 내시의 부축이 없으면 절도 할 수 없는 초고도 비만이 되었다. 아마도 거침없이 뿡뿡거리고 다녔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레이황의 말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 당시 기록에는 수도 북경성(北京城)이 얼마나 평안하고 부유했는지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러니까 제국은 이미 여러 군데 금이 가기 시작했는데, ‘태평성대’의 타성에 젖어, 아무도 경고를 발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곧 무시되었다. 그래서 레이황은 아무 일도 없는 평온한 나날이 위기의 전조(前兆)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도발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드디어 만력제가 사망하고 태자인 주상락(朱常洛)이 즉위하였으나 한 달 만에 죽고, 다시 그의 장자인 주유교(朱由校)가 즉위하였다. 그는 재위 7년 동안 ‘목수황제’가 되어 가구(家具)만 만들다가 죽었다. 내시가 국정을 농단하는 사태는 더욱 심해져서 중국 역사상 최악의 내시 중 하나로 꼽히는 위충현(魏忠賢)이 바로 이때 등장하는데, 이런 자가 나올 환경이 딱 만들어져 있었다. 그는 시대가 만든 괴물인 셈이다. 


  그리고 동생 주유검(朱由檢)이 제위를 이어받았는데, 그가 바로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이다. 그는 17년 동안 황제 자리에 있으면서 나름 애썼지만 이미 급속도로 기울어져 버린 제국은 가망이 없었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내리지 못하고 계속 판단을 그르치다가, 끝내는 “나는 망국의 군주가 (될 사람이) 아닌데, 그대들이 나를 망쳤다.”라고 신하들을 원망하면서 책임을 전가하였다. 결국 이자성(李自成) 농민군의 함성이 궁성까지 들리자, 내시 한 명과 함께 매산(煤山, 지금의 景山)으로 올라가 목을 매어 자진하였다. 그 와중에 조상 뵐 면목이 없다고 머리를 풀어 얼굴을 가리는 ‘쓰잘머리 없는’ 꼼꼼함도 잊지 않았다. 그의 할아버지나 아버지보다는 그나마 낫지만, 망국의 책임 중 상당 부분은 우유부단하고 무책임했던 그의 몫이다. 수백 년 이어온 강대한 제국도 한번 혼군을 만나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데, 조손(祖孫) 3대가 이랬으니 결과는 뻔하다. 좀 다른 얘기지만, 그리 동정해 줄 필요가 없는 이 망국 군주의 넋을 달랜다고 조야(朝野)가 소복을 입고 만동묘(萬東廟)를 지어 조선이 망할 때까지 제사를 올린 우리 할아버지들 모습에 나는 경악하고 통탄한다.


  훗날 명나라의 정사인 『명사(明史)』에는 “명나라는 명목상 숭정제 때 망했지만, 실은 만력제 때 망했다(明, 名亡於崇禎,實亡於萬曆)라고 쓰고 있다. 무서운 말이다. 그러니까 ‘언로를 넓게 터 주시옵소서’라는 말은 조선 시대 상소문에만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듣기 싫다고 해서 ‘쓴소리’라는 경계경보를 차단하다가 오랜 기간 쌓아온 공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아프리카 들판에도 사자가 다가오면 높은 나무에 있는 원숭이가 큰소리로 알려주는 경보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데, 오직 인간만이 경고해주는 동족을 죽이고 멸망을 자초한다.


  그래서 북송의 개혁가 범중엄(范仲淹)은 그의 명작 「악양루기(岳陽樓記)」에서 선비는 “천하 사람들의 걱정에 앞서 걱정하고, 천하 사람들이 다 즐거워한 뒤에 즐거워(先天下之憂而憂,後天下之樂而樂乎!)”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이 화두가 되어 이를 전통 중국 지식인들이 반드시 새겨야 할 의무로 여기고, ‘우환의식(憂患意識)’이라고 불렀다. 천년이 다 되어 가는 송나라 선비의 말이지만, 지금도 매우 유효하다. 만력제처럼 술만 마시고, 충언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패거리를 작당하여 이익만을 탐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정작 국정은 아랑곳하지 않는 ‘태정(怠政)’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이른바 ‘배운 자’들은 두루두루 잘 살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쉽지는 않지만, 눈을 부릅뜨고 가끔 경보를 발해야 한다는 우환의식의 책무를 떠올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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