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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함께하는 사랑방)

밥상에서 시작된 변화 - 지역과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학교급식의 힘

작성일
2025-04-23
조회수
80


이현지 
유엔세계식량계획(WFP) 한국사무소장 


학교에 따뜻한 음식이 도착하는 시간, 갓 지은 밥 냄새와 함께 신선한 채소가 들어간 커리통이 교실 한편에 놓인다. Maheshika씨는 자신이 직접 기른 농산물로 오늘도 스리랑카의 아이들에게 한 끼 식사를 제공한다. 이 식사는 아이들에게는 학업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Maheshika 가족에게는 경제적 자립의 시작점이 된다.  

이는 단 한 가정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 여러 국가에서 운영 중인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의 Home-grown School Feeding (HGSF, 지역농산물 연계 학교급식)사업은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활용해 학교 급식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지역 경제를 순환시키는 구조적 모델이다. WFP의 HGSF 관련 이니셔티브는 지난 10여 년간 빠르게 확대되어, 2023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59건에 달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이러한 모델이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표 사례 중 하나다.  

3년 전, 코로나19, 기후 변화, 그리고 경제 위기가 맞물리며 스리랑카는 독립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를 겪었다. 식량과 연료 가격이 폭등하면서 전체 가구의 약 90%가 식사를 줄이거나 끼니를 거르는 상황에 놓였고, 특히 여성과 아이들의 영양 상태는 더욱 취약해졌다. 이후 스리랑카는 점진적으로 회복하는 중이지만, 여전히 4명 중 1명꼴로 빈곤선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HGSF는 단순히 아이들에게 끼니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농가의 역량을 강화하고 아동의 영양을 보장하며, 지속가능한 식량 시스템의 기틀을 마련하는 모범적인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HGSF는 지역의 소규모 농가로부터 채소와 달걀 등을 적정한 가격에 조달해 학교에 공급하며, 남은 생산물은 지역 내 유통을 통해 농가가 추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농가의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 농업 인프라와 장비, 기술 교육 등도 함께 제공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식량 지원을 넘어, 지역의 생산 기반을 확장하고 시장과의 연결을 강화하는 구조적 접근이다.  

“지역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며 급식 조리사들이 하나둘 일을 그만뒀어요. 제 아들을 포함한 아이들이 끼니를 거르게 되는 건 막고 싶었죠.”  

Maheshika는 그렇게 급식 조리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들의 반 아이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했지만, 지금은 매일 60명 아이들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다. 그녀가 직접 재배한 채소는 매일 아침 아이들의 식판 위에 오른다.  

2022년, 경제 위기와 가뭄은 Maheshika 가족의 생계를 위협했다. 작물은 메마른 땅에서 자라지 못했고, 남편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로 떠나야 했다. 남겨진 Maheshika는 두 아들을 돌보며 하루하루 버텨야 했다.  

그러나 WFP의 Home-grown School Feeding 프로그램은 그녀에게 새로운 생계와 경제적 자립의 기회를 열어주었다. 농업 장비, 급수 시스템, 종자, 재배 기술 교육을 지원받은 후, 이제는 계절과 기후에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작물을 재배할 수 있게 되었고, 매일 직접 수확한 신선한 식재료로 아이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잉여 작물은 지역 내 다른 조리사에게 판매하며 가족의 생활비와 두 아들의 교육비를 마련할 수 있는 소득도 생겼다.

Maheshika의 하루는 여전히 바쁘지만, 그 속에는 최소한의 생존을 넘어 자립과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처럼 HGSF 사업은 여성 영농인이 단순한 수혜자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 경제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WFP는 참여 여성들을 대상으로 가계 자금 관리 및 비즈니스 역량 강화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잉여 생산물의 유통 전략 등 실질적인 소득 창출 기반을 마련하는 다양한 교육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2023년, 금융산업공익재단의 지원으로 시작된 스리랑카의 HGSF 사업은 현재까지 2개 지구의 22개 구역 내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50,000명 이상의 아동에게 신선한 학교 급식을 제공하고 있으며, 600명 이상의 영농인 및 급식 조리사를 양성해 왔다. 이 사업은 단발성 지원이 아닌, 스리랑카 정부의 국가급식 제도에 통합되어 장기적으로는 정부 주도의 정책으로 제도화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국가 주도 사업으로의 구조적 전환이 가능하려면 민관 파트너들의 꾸준한 관심과 지속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다. 

WFP는 단기적인 식량 지원을 넘어서, 국가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지속가능한 인도주의적 접근이라 믿는다. 스리랑카의 HGSF는 바로 그 철학이 현장에서 실현되고 있는 사례이며, 그 출발점에는 금융산업공익재단의 지원이 있었다. 재단의 기여는 여성과 아동의 회복력을 증진하고, 지역 내 안정적인 경제 순환 구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 저희 가족은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1년 내내 경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수확한 작물 중 일부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 얻는 추가 수입은 두 아들을 교육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WFP는 오늘도 현장에서 매일 아침을 준비하는 Maheshika와 같은 분들을 응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이 더 많은 아이들의 내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금융산업공익재단과 같은 든든한 파트너와 함께 걸어가고자 한다.  

한 끼의 밥상이 아이들의 미래, 여성의 자립, 지역사회의 회복을 이끌어가는 이 여정에 더 많은 연대와 관심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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