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성공을 위한 세 가지 처방
- 작성일
- 2025-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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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식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금융산업공익재단 이사)
이재명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이 빠른 속도로 정돈되고 있다. 내란 극복과 경기 침체, 통상 압박이라는 전례 없는 동시다발적 위기 상황에서도 이재명 정부는 국익과 실용을 기조로 산적한 국내외 현안에 대해 신속하고 명쾌한 판단으로 불안감을 해소하고 신뢰감을 높이기 위해 힘쓰고 있다.
그러나 새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이 효과성을 입증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오늘날의 국가는 충돌하는 국내외 이익들을 조율하면서 사회를 통합하고, 국민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 수많은 이해 당사자들의 양보 없는 집단적 이기주의가 분출하는 상황에서 충돌하는 이익을 조율하면서 미래를 향한 국민적 의지를 결집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새 정부는 상상 이상의 긴장감으로 성과를 입증해야만 긍정적 평가를 기대할 수 있다.
정부가 산적하고 당면한 과제들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강력하고 투명하며,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목표를 추구하는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선결 조건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서 곧바로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믿음은 순진한 가정이다. 새 정부는 지뢰들이 가득한 현실의 전장에서 진정한 승부를 앞두고 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한 번의 잘못된 판단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하루아침에 허물 수 있다. 새 정부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세 가지 처방의 기준을 중시해야 한다.
첫째, 새 정부는 ‘선한 의지의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 선한 의지를 명분으로 정권을 잡은 정부가 뜻하지 않은 진퇴양난에 빠지는 이유는 의도하지 않은 정책의 결과 때문이다. 정책의 추진 주체와 대상 간에는 생각보다 큰 거리가 있다. 정부보다 국민이 더 똑똑하고 유능한 상황에서는 정부의 실패 가능성은 훨씬 크다. 정책 현장의 갈등은 사회 세력들 간에 새로운 균형을 찾기 위한 치열한 상호 적응 과정이다. 이 게임에서 정부가 민간을 압도하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과거보다 훨씬 겸손하고 신중한 자세로 현실과의 대화에 임해야 한다.
정부, 이익집단, 개인은 각자의 목표를 극대화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기 때문에 정부가 정책 대상에 대해 우월적 위치에 선다는 보장은 없다. 정부가 정책을 제시하면 시장은 이미 대책을 마련한다. 순진한 정부보다 똑똑한 시장과 국민이 정부를 압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보다 강한 존재와 상대하기 위해서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지혜가 요구된다. 정부는 정책 대상자들과의 긴밀한 소통과 협력을 통해서만 성공이라는 목표에 다가갈 수 있다. 선한 의지가 정책의 성공을 보장할 것으로 기대하는 순간 ‘정부의 실패’는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선한 의도를 말하는 것은 쉽지만, 성과라는 열매를 얻는 것은 훨씬 힘들다. 선한 의지와 신념으로 추진하는 정책들이 현실에서 좌초하는 이유는 정책의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선한 의도를 압도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새 정부 역시 선한 의지의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우선순위의 조율’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선한 의지의 함정을 넘어선다고 해서 정책의 효과를 낙관할 수 없다. 정치는 조율의 예술이다. 유능한 정치가는 수없이 많은 국민의 요구들 가운데 무엇이 급하고, 무엇이 우선인지를 신속하게 선별하고 갈등을 조율해야 한다. 정책의 무대는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치열한 갈등의 현장이다. 무언가를 선택하는 순간 무언가는 포기해야 한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과제들의 우선순위를 선별하고, 정렬하지 못하면 어떤 정책도 순조롭게 추진될 수 없다. 이재명 정부는 충돌하는 정책들의 우선순위를 순발력 있게 정해야 한다. 우선순위의 판단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면 정부는 예상하지 못했던 저항에 직면한다. 무엇을 중시하고, 먼저 시작해야 할 것인지 대해 최적의 판단을 도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셋째. ‘사회 정의의 원칙’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선한 의지의 함정을 넘고, 우선순위의 조율을 마쳤다고 해서 새 정부의 정책적 성공을 안심할 수는 없다. 국민의 삶을 중시하고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정부는 정의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권위적 정부는 힘으로 정책을 추진한다. 윤석열 정권은 사회 정의의 원칙을 무시한 권위주의 지도자가 몰락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민주적 정부는 국민이 동의하는 정의의 원칙을 준수하면서 성공을 추구하기 때문에 훨씬 큰 인내와 결의로 무장해야 한다.
20세기 진보적 사회 개혁의 철학적 근거를 탐구했던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는 그의 정의론에서 진보적 사회 개혁에서 물러설 수 없는 원칙을 논한 바 있다. 롤스가 제시한 정의의 출발점은 그 사회에서 가장 힘든 사람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다. 정의의 원칙은 새 정부가 추구하는 실용주의에 대해서도 그 범위와 정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어떤 정책도 그것이 가장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익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침해하거나, 이들에 대해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더 큰 불이익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의 기준은 정책의 우선순위 결정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 개혁은 혁명보다 어려울 수 있다. 사회 세력들과 이익집단들은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해도 자신들의 이익을 지킬 태세가 되어 있다. 반면 조직되지 못한 대다수 국민은 강자들의 경쟁과 힘겨루기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 있다. 선한 의지로 시작한 개혁이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으로 종결되는 실패 역사는 수도 없이 많다. 이재명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개혁이 성과를 거두고, 국민의 혜택이라는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강력한 기득권의 저항을 넘어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 정의의 원칙을 지키면서 선한 의지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우선순위의 조율을 완성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