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칼럼
칼럼(함께하는 사랑방)

필리핀 파야타스 소나타

작성일
2026-01-07
조회수
10

최정식 UNI-KLC(국제사무금융서비스노조 한국협의회) 사무총장


내가 필리핀 마닐라를 처음 방문한 시기는 1989년 아멕스카드사에 근무할 때다. 당시 각 국가별로 마켓팅 성공사례를 공유하기 위해 마닐라에서 열린 아태지역-마켓팅 컨퍼런스에 참가했다. 마침 대학선배의 부군께서 주 마닐라 한국대사관에 근무하고 있어서 잠시 관저를 방문해 필리핀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부정부패와 경제 사회적 불안 속에서도 국민의 대다수가 카톨릭 신자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했다. 당시는 오랜기간의 독재와 부패로 인해 마르코스 대통령이 추방되었고 부인 이멜다 여사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보여주는 말라카야궁 방문이 관광 코스중 하나였다. 

그 후 FIET(UNI의 전신)가 금융분과회의와 지역총회를 마닐라에서 몇차례 개최하여 방문할 때 마다 마닐라 시에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상을 잠깐 엿 볼수 있었다. 매번 마닐라 출장을 다녀온 후에는 굶주림으로 지쳐 거리를 떠돌고 있는 어린아이들과 어린아이를 안고 꽃다발을 파는 여성들의 모습이 떠올라 밤잠을 설치곤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출장때마다 거리의 자동차는 해마다 늘어나 여기저기 크락숀 소리가 경쟁하듯 터져나오고 있었고, 여전히 가난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야했다.

우리나라는 1950년 6.25 전쟁 후 잿더미에서 가난을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 선진국으로 나아가고 있다. 항상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 자식 교육에 열정을 쏟아부은 우리 부모님 세대와 우리의 성장 경험을 이들과 나누면서 실오라기 한줌 만큼이라도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귀국하고는 했다.

그러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노사간 대타협으로 금융산업공익재단(이하 재단)이 설립되었다. 전세계 여러 다양한 형태의 사회공헌 관련 공익재단이 있지만, 노사가 공동으로 기금을 형성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이후 2023년 처음으로 재단의 글로벌사회공헌 사업에 참여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국가는 당연히 필리핀이었다. 그동안 FIET-UNI 노조활동 속에서 리더쉽을 바탕으로 노사정 대화를 주도하며 지역주민을 위한 자선사업 등을 활발하게 전개해오고 있는 필리핀 금융노조에 연락해서 ‘빈민지역 주민을 위한 직업훈련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특히 필리핀 금융노조는 2004년부터 노조의 사회공헌사업으로 Teaching Mind, Touching Hearts, Transforming Lives란 가치를 설정하고 20여년간 빈민지역에 음식나누기, 재활프로그램, 학교보내기, 장학금 사업등을 전개해왔다. 어린이들이 쓰레기를 줍는 일에 내몰려 학교도 가지 못하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쌀, 학용품, 의약품등을 지역에 배포하였다. 파야타스 지역은 메트로 마닐라 구역안 퀘손시티내 동북쪽 끝에 위치한 시내 중심부에서 약 15km 떨어진 필리핀 내 대표적인 빈곤지역이다. 인구는 약 14만 명으로 대부분 일정한 직업이 없다. 때문에 근처에 산더미같이 쌓아놓은 쓰레기 하치장에 가서 물건을 주워서 다시 팔거나 재활용하는 것이 이들이 할수 있는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다고 한다. 일본 정보통신노조는 2014년부터 이 지역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필리핀 금융노조는 현지의 지방자치단체나 여러 시민단체와의 네트워크가 잘 형성되어있어서 사업 시작단계에서도 많은 협조를 받아낼 수 있었다.

직업훈련센터 시설은 지역내 한 집을 임대·부분 수리하여 사용하고 있다. 비좁은 공간과 낡은 시설이지만 재봉틀, 컴퓨터 사용법, 뜨개질 배우는 곳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뜨개질을 배우러 온 중년 여성의 의자 뒤쪽에 3-4세 어린아이가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엄마에게 매달려있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기술을 배우러오는 엄마들이 아이를 돌보아 줄 수 있는 가족이 없어서 함께 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어린이들을 전문적으로 돌볼수 있는 보육교사는 없고 센타 자원봉사 아줌마들이 도와주고 있다.

2023년 11월 22일 개소식 이후 2025년 12월까지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총 262명, 생활지원 프로그램에 총 226명이 참가하였다.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된 상품은 노조와 기업체의 행사, 바자회, 마켓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또한 판매금의 일부분은 제작에 참여한 훈련생들에게 지급되었다. 파야타스 직업훈련센터는 롤모델이 되어 여러 바랑가이(필리핀에서 가장 작은 지방 정부 단위)에서도 벤치마킹하고 있다. 2024년 5월에 퀘손시 시장(Mayor Joy Belmonte)으로부터 지역사회개발 공헌상을 수상하였고, 2024년 7월에는 Benia & Cxatalino Yap Foundation으로부터 사회적기업 개발상을 수상하였다.

한편 파야타스 직업훈련센터는 사업고유의 직업훈련 및 생활지원 프로그램 활동 이외에도 지역의 주민센타 역할을 통해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기적으로 보건소 직원들과 협조하여 지역주민들의 보건 및 예방사업 관련 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노인들에게는 폐렴 예방접종, 어린이들에게는 각종 면역 접종, 기초 의료진단 및 무료로 의약품을 배포하고 있다. 태풍이나 홍수 피해가 났을 때 긴급 구호 식량과 구호품을 배포하고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줌바댄스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우리는 센터에서 이 프로그램을 이수한 후 취업하거나 자영업을 하고 있는 성공한 훈련생들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중 한 청년은 중동지역에 취업했지만 갑작스런 사업중단으로 할 수 없이 귀국해야 했고, 마침 센터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컴퓨터·포토숍 교육을 이수하여 현재는 파야타스 바랑가이의 공무원으로 재직중이다. 다른 여성들은 헤어기술, 뷰티 메이커 교육을 받고 개인적으로 사업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자신감 넘쳐보이는 밝은 표정을 통해 우리는 경제적 자립을 통해 자기주도의 삶을 영위하고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부모보다 더 정신적,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만들어 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현재까지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배경에는 금융산업공익재단 임직원들의 외국 문화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이해 그리고 사업을 현장에서 수행하고 있는 필리핀 팀들의 열정과 정직한 태도, 원활한 의사소통이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사회공헌사업이 한국의 성장 발전 스토리를 공유하되 우리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국가별로 독특한 역사, 지리적 환경등 여러 요소가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인간은 누구나 교육을 통해 스스로 자기발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재 의미는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이 사업이 이러한 공통적 가치에 기반한 작은 성공 사례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파야타스 직업훈련사업은 한국과 필리핀을 이어주는 새로운 소나타 연주를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할 것이다.

안내 메시지

안내 메시지

   취소

해당 서비스는 로그인을 진행해야 사용 가능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