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아니라 권력을 나누는 사회공헌은 가능한가
- 작성일
- 202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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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하 더나은미래 편집국장
억만장자 투자자 조지 소로스(George Soros)가 1990년대 초 설립한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은 최근 유럽 로마(Roma) 공동체 지원 사업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재편했다. 30년 넘게 재단 내부에서 운영해 온 로마인 지원 프로그램을 분리해, 당사자들이 직접 운영하는 독립 재단으로 전환한 것이다. 재단은 약 1억 유로(한화 약 1700억)의 자금과 함께, 무엇보다 중요한 의사결정권을 넘겼다. 단순한 사업 이관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할 권한 자체를 이전한 선택이었다.
이 결정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금융 시장의 냉정한 분석가로 알려진 조지 소로스조차, 사회문제 앞에서는 ‘전문가의 판단’보다 ‘당사자의 삶’이 더 정확한 정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이는 특정 재단의 파격적 선택을 넘어, 필란트로피(Philanthropy) 전반의 작동 방식을 다시 묻게 한다.
최근 글로벌 필란트로피에서 주목받는 ‘참여적 보조금 지급(Participatory Grantmaking)’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흔히 이 모델은 ‘참여’나 ‘포용’의 언어로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훨씬 급진적인 질문을 던진다. 누가 문제를 정의하는가, 누가 해법을 선택하는가, 그리고 실패의 책임은 누가 지는가. 참여적 보조금 지급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재단이 아니라 당사자에게 일부 혹은 전부 돌려주는 시도다.
기존 공모 구조에서 재단은 명확한 권력을 쥐고 있다. 어떤 문제가 중요한지 결정하고, 어떤 해결 방식이 타당한지 평가하며,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롭다. 반면 지원단체와 당사자는 자신의 필요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그 설명이 채택될지는 재단의 판단에 달려 있다. 참여적 보조금 지급은 이 관계를 ‘완화’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의사결정의 일부를 아래로 이동시킴으로써, 재단과 지원단체 간의 위계 자체를 흔든다.
이 지점에서 금융산업공익재단의 구조는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 된다. 금융산업공익재단은 은행권을 중심으로 한 여러 금융기관의 노사가 공동 출연해 설립한 재단이다. 즉, 출발부터 단일 주체의 판단이 아니라 이해관계자 간 권한 조정과 합의를 전제로 한 구조였다. 자본을 제공하는 쪽과 노동을 제공하는 쪽이 함께 의사결정 틀을 만들었고, 그 결과가 재단이라는 공익적 주체로 구현됐다.
다시 말해 금융산업공익재단은 이미 한 차례 ‘권력 분산’을 경험한 조직이다. 다만 그 분산의 범위는 노사 내부에 머물러 있었다. 참여적 사회공헌이 던지는 질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협력과 상생의 구조를 왜 재단 내부에서만 적용하는가, 왜 지원 대상인 당사자까지 확장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다. 금융산업공익재단의 설립 논리가 살아 있다면, 그 다음 단계는 자연스럽게 당사자와의 권한 공유로 이어져야 한다.
사실 당사자의 목소리를 의사결정 과정에 포함시키는 일은 도덕적 선언이 아니라 실무적 선택이다. 첫째, 효과성의 문제다. 정책 설계자나 재단 실무자가 놓치기 쉬운 미시적 장벽은 당사자의 삶에서는 결정적이다. 당사자가 의사결정에 참여할수록 이런 오류는 줄어든다. 둘째, 형평성의 문제다. 기존 공모 구조는 재단과 지원단체 사이의 위계를 고정해 왔다. 참여적 구조는 그 위계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균열을 낸다. 셋째, 지속가능성이다.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한 주체는 사업을 ‘외부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자기 일’로 인식한다. 이는 사업의 유지와 확장 가능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관점에서 공모사업 역시 다시 보아야 한다. 공모는 단순히 ‘잘하는 단체를 골라 지원하는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재단이 권력을 어떻게 행사하는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현실적으로 공모의 선정률은 10%를 넘기기 어렵다. 문제는 탈락한 90%에게 무엇이 남는가다. 탈락이 침묵과 좌절로 끝난다면, 그 구조는 생태계를 소진시킨다.
이 한계를 문제 삼아 등장한 조직이 ‘언펀디드 리스트(Unfunded List)’다. 이들은 공모에서 선정되지 않은 단체들에게 독립 전문가의 피드백을 제공한다. 왜 탈락했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 다음 단계는 무엇인지가 문서로 남는다. 탈락은 끝이 아니라 학습의 시작이 된다. 이는 재단이 심사 권한을 독점하는 대신, 그 권한의 일부를 ‘피드백’이라는 형태로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금융산업공익재단에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선정은 결과가 아니라 관계의 시작이어야 한다. 탈락한 단체 역시 재단의 실패 사례가 아니라, 생태계의 학습 자산이다. 사회공헌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내려진 결정이다. 현장을 모르는 판단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고, 그 비용은 결국 사회 전체가 떠안게 된다.
참여적 보조금 지급은 이상적인 구호가 아니다. 이는 전문가주의의 한계를 인정하고, 의사결정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다. 금융의 언어로 옮기면,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자원의 낭비를 최소화하는 전략에 가깝다. 금융산업공익재단이 이미 노사 협력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권력을 나누는 구조는 느려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안정적인 결과를 만든다. 이제 그 원리를 사회공헌의 대상인 ‘당사자’에게까지 확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질문으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