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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함께하는 사랑방)
AI 문명시대와 대한민국의 ‘진짜’ 국운(國運)
- 작성일
- 2026-03-06
- 조회수
- 130

조대엽(고려대 명예교수, 사단법인 선우재 이사장)
AI가 세상과 시대의 화두다. 대통령께서 AI 3대 강국 진입을 공약하고, 실제로 국정의 주요 방향이 AI 관련 정책에 맞추어지고 있다. 며칠 전에는 소모임에서 구윤철 부총리의 짧은 강의를 들었는데 AI가 여는 한국 경제의 앞날에 관한 내용이었다. 본인이 진두지휘하는 경제정책임에도 스스로 흥분한 듯한 열띤 강의가 오히려 믿음과 기대를 갖게 해 인상적이었다.
지난해 10월 말,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경주 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고, 서울에서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과 현대차 정의선 회장이 함께 한 자리에서 서로를 ‘AI 깐부’라고 부르며 치맥을 나누는 장면이 뉴스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포함한 AI 시대의 ‘4대 천왕’이 경주로 가서 이재명 대통령을 만났다. 여기서 젠슨 황CEO는 한국에 GPU 26만 장 공급을 약속했다. 한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GPU와 AI인프라를 갖춘 AI 선도국이 될 것이며, 그 여정에 엔비디아가 함께 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한국이 소프트웨어 전문성과 기술적ㆍ과학적 역량, 그리고 제조 역량이라는 세 요소를 모두 갖춘 나라라고 추켜세웠다.
젠슨 황의 메시지는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AI, 반도체, 로봇 관련 주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코스피 6000 돌파가 현실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AI 생태계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높아졌다. 엔비디아가 생산하는 AI 기술의 하드웨어 GPU와 그 모델들인 H100, H200, 여기에 탑재하는 메모리 반도체의 진화된 모델인 HBM(High Bandwidth Memory)과 현재 주력 모델인 4세대 확장형 HBM3E, 5세대 모델인 HBM4, 나아가 H100, H200의 후속작으로 발표된 B100, B200, 그리고 엔비디아가 구축한 소프트웨어 플랫폼 CUDA, AI의 미래 비전인 피지컬 AI와 월드 모델 등 AI 생태계의 기술적 용어가 낯설지 않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ChatGPT, Claude, Gemini, Perplexity와 같은 도구를 학습시키고 구동하는 테크놀로지를 짐작하게 되었고,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구축한 AI 생태계, 그리고 로봇이나 자율주행, 스마트공장 분야에서 현대차그룹과 엔비디아의 ‘AI 동맹’에 대해서도 이해가 높아졌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 툴로 AI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AI 기술과 AI 경제가 이미 국민적 관심이 되었다. 대한민국이 AI 문명을 선도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AI 시대를 맞아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감히 말하자면 ‘국운’(國運)이 열리는 조짐이다. 무슨 비과학적이고 근거 없는 기대냐고 할지 모르나 국운은 두 가지 사실에서 근거 있는 전망이다. 하나는 국운이 국정의 탁월한 리더십의 효과라는 사실이다. ‘국정의 리더십’은 최고지도자의 시대를 읽는 통찰이 예리한 비전으로 제시되고, 여기에 국민의 전폭적인 공감이 결합될 때 만들어진다. 통찰과 비전은 지도자의 자질이지만 공감은 깨어있는 시민의 자질이다. 그래서 위대한 리더십은 지도자의 탁월한 통찰에 깨어있는 시민의 공감과 연대가 팔로우십을 만들 때 탄생한다. 국운은 곧 리더십의 예술이자 깨어있는 시민이 만드는 공감의 예술이다.
국운이 근거 있는 전망인 다른 하나의 이유는 역사적으로 축적된 효과라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위대한 리더십과 위대한 시민의 공감이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새로운 국운을 연다. 축적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재명 정부가 여는 AI 시대는 김대중 정부의 IT강국 비전이 축적된 토대 위에서 빛나는 기회의 문일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IT강국 비전은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을 시작으로 OECD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1위에 이르는 디지털 코리아의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정보 선진국으로 도약시켰다, 김대중 정부의 IT강국 전략은 노무현 정부의 전자정부 로드맵과 ‘IT 839 전략’으로 진화했고, 문재인 정부에서 ‘디지털 뉴딜’의 비전으로 데이터 댐, 데이터 고속도로 등 기초 인프라 강화와 전 산업의 5GㆍAI 융합 확산, 국토와 정부의 디지털화를 가속화하는 정책으로 진화했다.
나는 김대중 정부의 IT강국 전략을 21세기 대한민국 성장의 정책적 기원으로 해석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20세기 대한민국 산업화의 중심에 ‘박정희’가 있었다면 21세기 대한민국 신경제의 중심에 ‘김대중’이 있다. 박정희의 산업화모델이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면, 김대중의 ‘IT강국ㆍe-코리아’ 비전이야말로 국가부도의 파산 위에 정보화의 기적을 이룬 21세기 지식기반 경제의 축복이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어쩌면 김대중 대통령의 탁월한 통찰과 ‘그의’ 위대한 국민의 공감 능력이 준 선물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AI가 여는 이재명 정부의 국운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축적 위에서 피어나는 또 한 번의 축복일 수 있다. 게다가 대통령의 통찰에다 빛의 혁명을 만든 깨어있는 시민의 공감과 연대가 있기에 국운의 전망은 더욱 밝을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운을 열었던 당대의 정책 과정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정책의 그늘’을 놓치지 않았던 정책적 안배를 돌아보아야 한다. 진보 정부에서는 무엇보다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용과 형평이 강조되었다. 치열한 정보화 전략 속에서도 정보격차와 취약층에 대한 정책이 동반되었다.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 또한 기술적ㆍ문화적 소외층을 줄이는 정책적 설계를 반영하고 있다. 문제는 AI가 인류의 예측을 넘어서는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 월가를 뒤흔든 시트리니 리서치(Citrini Research)의 보고서 「2028년 글로벌 지능 위기(The 2028 Global Intelligence Crisis)」는 AI 기술의 성공이 오히려 경제 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역설적인 시나리오를 담고 있다. 알고리즘, 빅테크의 거대플랫폼, 데이터 소유권으로 무장된 ‘기술권력’과, 민주적 통제, 국가 주권,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방어하려는 ‘사회권력’의 충돌도 현실이 되고 있다.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은 「권력과 진보」(Power and Progress)에서 지난 1000년간 기술의 진보와 통제는 언제나 소수의 몫이었고, 기술의 진보가 모두의 삶을 향상시킨 것은 오로지 테크놀로지에 대한 지배층의 선택에 도전하고 기술 이익을 더 평등하게 공유되는 방식을 강제한 덕분이라고 강조한다.
AI 혁명을 ‘불의 발견’을 넘어서는 문명사적 진보라고도 한다. 대한민국이 이 거대한 문명사적 진보의 선도국으로 국운을 여는 일은 고삐 풀린 AI의 위험을 경계하며, 기술권력의 포용성과 형평성을 훨씬 더 확장하는 정책적 안배에 있다. AI 선도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이 인류에게 전해야 할 메시지는 AI 성장주의의 낙관적 비전을 훨씬 더 포용적인 새로운 비전으로 진화시켜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AI에 관한 포용적 비전은 기술 엘리트들의 박애주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는 다른 사회적 권력 기반에서 나온다. 포용과 협력을 지향하는 진보적 정치사회 기반이 훨씬 더 강화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정책적 배분에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정치권력과 사회권력의 더 고른 배분에 대한 대통령의 더 큰 통찰과 더 큰 시민적 공감 만이 AI문명 시대 대한민국의 ‘진짜 국운’을 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