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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함께하는 사랑방)

주린이의 금융시장 동참기

작성일
2026-07-20
조회수
35


송호근  한림대학교 석좌교수


 현대자본주의에서 소득의 원천은 노동시장과 금융시장이다. 노동시장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참여하는 직업시장이고 생계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장소이기에 별다른 설명 없이도 이해하기 쉬운 대상이다. 금융시장은 기업의 생산활동과 상품 유통, 일자리 창출 등을 지원하고 자금 유통과 투자를 가능하게 만드는 자금시장이다. 그런데 기업에서 제조하는 수천 가지의 상품들은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반면, 금융시장에서 만드는 상품들은 그 본질을 잘 모른다. 은행이나 증권 회사, 투자회사에서 만들어 파는 상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것의 소득 원천은 무엇인지 복잡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금융시장에 문제가 발생하면 노동시장과 직업시장에 직접적인 충격을 미치고 심지어는 공황 상태를 유발하기도 한다.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가 그러하다. 두 건의 금융위기는 오로지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던 무고한 직장인들을 기습했다. 1998년에는 수백만 명의 직장인들이 일터를 잃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으며, 2008년 금융위기는 3만 달러를 향하던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을 1만 5천 달러대로 떨어뜨릴 만큼 위력적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의 주택시장 버블에서 비롯되었다. 저당권을 소유한 모기지 대출기관은 대출채권을 발행해 현금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자산유동회사들은 주택저당증권을 파생상품으로 만들어 시중에 팔았는데 이런 과정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증권사, 보험사, 투자자가 서로 얽힌 채 애초의 저당권 가치가 4배가량 증식되기에 이르렀다. 그 때 집값이 느닷없이 하락했다. 투자자들이 일시에 현금인출을 요구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산 사태가 발생했고 이것이 월스트리트를 거쳐 세계 금융시장으로 확산되었던 게 2008년 금융위기의 본질이다.


 금융위기가 한국에 상륙한 것은 2008년 10월 24일이었다. 한국 증시에서 500조 원이 하루아침에 증발되었고, 각종 펀드와 투자 기금이 반토막 났고 환율이 1,500원 선으로 급등했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를 덮치자 소비와 투자가 얼어붙었으며, 기업들은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시장은 달러에 기갈이 든 것처럼 보였다. 이른바 ‘악마의 맷돌’(Satanic Mill)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을 필자는 이렇게 썼다. 


“악마의 맷돌을 달래려 미국이 1조 달러의 공물을 바치고, EU가 수조 유로의 구제금융을 모으고, 아시아가 800억 달러의 긴급자금을 조성하겠다고 용서를 빌어도 거식증에 걸린 금융시장은 대륙을 가로 질러 질주한다. 돈 냄새가 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주저앉을 태세다. 허기진 시장은 돈의 주인을, 주인의 인품과 형편을 따지지 않는다. 기업자금, 세금, 보유 외환을 포식하고도 모라자 결혼자금, 학자금, 증권, 주식, 투자금, 대출금에 서린 서민의 애환과 소망을 먹어 치웠다. 마치 펄벅의 『대지』에 나오는 메뚜기떼와 같고, 히치콕 영화의 새 떼와도 같다.”


 그 해 금융위기는 기업과 서민 생계에 엄청난 상처를 입히고 진정되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렇게 근사하게(?) 썼음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금융시장 경험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주택대출금에 이자 납부, 적금 정도라고 할까? 교수 월급으로는 장기 예금조차 상상할 수 없는 처지였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실물시장은 물론 금융시장을 단단히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주식시장이 금융시장의 요체이므로 주식 경험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은 진즉에 있기는 했으나 엄두를 내지 못했던 터였다. 마침 한국의 주식시장에 불이 붙었다.


 기어이 예금을 헐었다. 전 국민 주식대열에 동참하기로 했다. 세금 떼고 2% 남짓한 이자에 목을 맨 평생의 인내심을 포기한 후였다. 앱을 깔고 사용법을 설명하는 증권 회사 직원의 희망찬 목소리가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아니야, 이건 국가 산업에 투자하는 거야, 십시일반 돈을 보태 기업을 살리는 애국의 길이지. 생애 최초로 주식 계좌를 개설하면서 식민 시대 그 비장했던 국채보상운동을 떠올렸다.


 주가는 상승세였다. 은행 1년 이자를 하루 만에 갈아치웠고, 삼일 후에는 5년 치 선을 치고 올라갔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넣을 걸, 후회가 밀려 왔다. 주식 매수 방법을 들었건만 앱에 익숙지 않은 손가락이 떨렸다. 수익 20% 선에 도달했을 때에는 술 한잔 마시며 혼자 히죽거렸다. 다른 적금을 깨야 하나. 머릿속에 화톳불이 계속 켜졌다. 유튜브가 권하는 손절이니 익절이니 하는 말은 들리지도 않았고 다만 수익선을 상향 조정했을 뿐이다. 이렇게 쉬운 걸 왜 평생 외면했을까, 왜 다른 사람들은 울상일까 하는 즐거운 조바심이 내면에서 들끓었다. 


  미국·이란 전쟁이 터졌다.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한 달 동안 힘겹게 쌓아올린 상승분이 몇 시간에 날아갔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주가 하락을 대비하라는 주식전문가들의 경고를 흘려들은 건 아니었다. 대비할 방법을 몰랐다. 국가경쟁력 증진에 동참한 길에 그 정도야 견딘다는 소명의 방벽을 둘러친 터였다. 그런데 주가는 정체 모를 수십 개의 납추를 달고 사뿐히 낙하했다. 마치 한 걸음씩 힘겹게 도착한 5부 능선에서 등을 떼밀려 낭떠러지에 추락한 느낌이었다. 결국 탈출했다. 한숨을 몰아쉬었다. 


 이 안도의 한숨은 주가가 보름 뒤 원상 복귀했을 때 탄식으로 변했다. 참을 걸. 견뎌야 한다는 전문가의 말을 들을 걸. 그러나 무경험 초보자에게 맷집이 있을 리 없었다. 시장은 도대체 급락의 원인이 뭔지를 따질 겨를을 허용하지 않았다.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앱에 매달렸다. 하루에도 앱을 켜는 횟수가 급격히 늘었다. 이 나이에 무슨 짓? 아니야, 국채보상운동의 현대판이지. 길가 휴게소 청년들, 버스 승객들도 주식 앱에 열중이었다. 짧은 탄식과 환호가 겹쳤다. 결국 다시 진입했다. 이번에는 작은 적금을 털어 투자액을 늘렸다. 25% 수익을 자체 결정하고 내심 승전의 미소를 지었다. 주식은 안정을 되찾아 작은 등락을 거듭했지만 상승세였다. 고지가 보였다. 


 목표에 거의 도달한 6월 초순 시장이 다시 계곡 깊숙이 낙하했다. 하락의 원인을 정확히 짚는 사람은 없었다. 주가 급상승에 따른 ‘일시 조정’이란 말은 개념 규정이지 요인 분석은 아니었다. 충만함을 선사하던 수익이 순식간에 날아가고 원금 터치다운 일보직전이었다. 원금을 뚫고 활강하는 주가의 공포는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이번에는 맷집이 생겼는지 충격이 조금 약했다. 그 때 알았다. 빚투에 나선 청년들의 절박한 심정을. 하루 종일 앱에 망명해도 훼손된 원금과 불어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쩔쩔맬 수밖에 없음을. 주식 시장은 격려금은커녕 이자도 주지 않는 혹한의 극(極) 지대다. 


 두 번의 참패 끝에 필자는 혹한 지대를 빠져 나왔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현장 학습이었다. ‘장기투자’가 아니라면 그것은 분명 투기다. 유망한 기업에 장기간 자금을 대고 적정 보상을 받는 주식시장의 대의(大義)를 잊는다면 이른바 단타는 도박이고, 앱은 중독이다. 그런데 급상승과 하락을 거듭하는 불장에서 대의보다 대박을 외치는 사람이 대부분인 걸 어쩌랴.  


 주가는 필자의 예상과 항상 거꾸로 움직였다. 오를 거라면 내렸고, 내릴 거라면 횡보했다. 주가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수십 개에 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 자본시장 큰 손들의 수시 결단, 빅테크들의 우위권 경쟁과 경영전략, 유가와 반도체 가격 등 외부 요인들에 의해 휘청거렸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융 강국이라면 이토록 흔들리지 않을 텐데. 금융 약소국의 투자자는 정체를 모르는 외부 요인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다고나 할까. 그러니 아무리 투자 고수라 해도 투자 대상, 적확한 가격과 시점을 판별하기가 어려운 안개 시장이다. 이런 불장에서 대의와 소명의식은 생겨나지 않는다. 그저 생존하기 바쁘다. 고비마다 항상 돌발변수가 어디선가 튀어나왔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탓할 수도 없다. 그저 운(運)과 경험이 수익 실현의 가장 듬직한 무기일 뿐이다. 마침내 필자에게 깨우침이 왔다. 주식 세계란 풍랑이 몰아치는 거친 바다에 일확천금을 꿈꾸는 일엽편주를 띄우고 24시간 흔들리는 것.  


  달고 쓰린 이런 국민적 경험은 한국 금융 산업의 토대를 다지는 데에 필수적 코스라는 생각은 든다. 악몽과 길몽이 층층이 겹쳐 금융 강국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과거에 네덜란드, 영국,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제조와 금융은 자본주의의 두 개 축이다. 독일은 제조업을 붙들고 있는 반면 영국은 제조업을 버리고 금융을 키웠다. 미국은 1980년대 이후 금융으로 비중을 옮겨 월가의 큰손을 양성했고 금융의 힘으로 세계를 재패했다. 한국이 제조 강국의 정상을 유지하려면 막강한 금융 산업이 뒷받침돼야 함은 20세기 역사가 증명한다. 주식 열풍에 뛰어든 우리는 금융 강국으로 가는 노잣돈을 지불하는 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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