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경쟁력이 되는 휠체어 이용자가 모은 경사로 데이터
- 작성일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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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희 무의 이사장
모든 게 AI로 시작해서 AI로 끝나는 시대다. 하지만 AI는 지역사회에선 좀처럼 보기 어렵다. AX(AI 트랜스포메이션)라는 말이 서울이나 대도시에서는 활발히 오가지만, 지방에서는 그 이전 단계인 DX, 즉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2017년부터 무의가 ‘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깨달았다.
지하철 환승 시간을 카카오맵이나 네이버에서 찾아보면 아주 세세하게 나온다. 하지만 반드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는 휠체어 이용자를 비롯한 교통약자를 위한 환승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휠체어를 타는 딸이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를 찾아 헤매야 했고, 그럴 때마다 참고할 정보조차 없다는 게 안타까워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 이 지도다.
지도를 만들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장애와 관련 정보는 일부러 모으지 않으면 절대 모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10년 전 공무원이었는지 공기업 직원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휠체어 이용자들 많지도 않은데, 이런 지도가 왜 필요한가요?”
10년이 지난 지금, 무의는 환승지도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현장에서 그 길을 안내표지로 알려주는 ‘모두의 지하철’이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데이터로 시작해 결국 현장을 바꾸게 된 것이다.
2026년 금융산업공익재단의 지원으로 무의가 진행 중인 ‘모두의 1층X로컬’ 프로젝트도 같은 뜻에서 시작됐다. 경사로 지원사업도 경사로 정보도 찾기 어려운 서울 외 지역에서 장애당사자가 동네 접근성의 기초 단위인 경사로 데이터를 직접 모으고 경사로를 놓을 수 있는 곳 데이터도 모아서 맞춤형 경사로 10개를 마중물로 놓는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경사로를 확대할 수 있는 지역 조례 제정 역량까지 키워주는 프로젝트다.
휠체어 이용인에게는 편의점 상품권을 선물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편의점 중 경사로가 설치된 곳이 4%도 안되어서다. 편의점에 국한하지 않고 동네 가게들이 대부분 휠체어로 들어가기 어렵다. 그나마 접근 가능한 곳에 대한 정보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어느 곳에 어떤 불편이 있는지 체계적으로 정리해 두어야, 그것을 근거로 민원을 제기하고 조례 제정을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정보를 잘 모으고 업데이트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동인은 당사자다.
AI 시대에 소수자가 지워진다는 연구는 이미 차고 넘친다. 거대언어모델에는 소수자 관련 데이터가 드물다. 모으지 않았기 때문이다. AX라는 말이 판치는 세상에서도 소수자 관련 데이터는 여전히 흩어져 있거나, 모을 동력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모두의 1층X로컬’이 표방하는 정신은 소수자 시혜가 아니다. 정반대다. 장애 당사자가 스스로 이동과 접근성에 관한 데이터를 모으고, 그 데이터의 주인이 되어 동네를 스스로 바꿀 수 있는 힘, 즉 데이터 주권을 갖게 하는 일이다. 데이터에 기반해 직접 맞춤 경사로도 놓아본 경험을 마중물 삼아 당사자들이 지자체에 경사로 지원 조례까지 요구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시혜적으로 만들어진 데이터는 한 번 쓰이고 사라지지만, 주권을 가진 당사자가 쌓은 데이터는 계속 자라날 수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스몰 AI(Small AI)’라는 개념을 내세운다. 막대한 연산력과 자원을 필요로 하는 초거대 언어모델, 이른바 ‘빅 AI’와 대비해, 저비용으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서도 작동하며 특정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는 데 특화된 실용적인 AI다.
소수자 데이터를 소수자가 중심이 되어 모을 때 현장을 바꿀수 있다는 경험을 모두의 지하철 프로젝트를 통해 실감했기에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사회분과에 합류해 “공익데이터”라는 개념을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러 모아야 하는 소수자 데이터는 AI 시대에 훨씬 더 중요해져서다.
마침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8월 말 AI 윤리원칙을 발표할 예정이다. 2020년에도 원칙은 있었지만, 이번에 특별히 강조된 것이 ‘포용(포함, inclusion)’이다. 소수자가 데이터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소수자 스스로 데이터를 모으고 데이터 주권을 가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 ‘모두의 1층X로컬’의 기본 정신이기도 하다.
10년 전 교통약자 환승 데이터를 모으는 무의 활동은 서울역이나 시청역처럼 복잡한 역에서 이동약자의 이동 시간을 40% 이상 줄여주는 ‘모두의 지하철’로 이어졌다. 이런 변화가 지역에서도 만들어지길 바란다.
세계 AI 시장은 이미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의 프론티어 모델들로 가득하다. 그 경쟁에서 한국이 같은 방식으로, 같은 크기로 맞설 이유는 없다. 당사자가 직접 데이터를 모으고 그 데이터의 주권을 갖게 하는, 스몰 AI에 가장 가까운 현장의 경험을 확대해야 한다. 소수자와 지역이 지워지지 않는 데이터야말로 한국이 프론티어 AI 각축전 속에서도 가질 수 있는 선한 경쟁력이자 선한 영향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