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의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인구는 최근 몇 년 간 계속 증가해 3억 명을 넘어섰다. 역사상 가장 많은 무력 분쟁의 발생과 기후위기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이제는 모든 전쟁에서 군인보다 민간인 희생자가 더 많고, 기후 변화로 각종 재해가 급증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특히 아동들은 이러한 위기 상황에 더욱 취약하다. 얼마 전 휴전에 들어간 가자 전쟁으로 인한 4만 명 희생자 중 3분의 1이 아동이다. 전 세계 아동의 20%가 분쟁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은 무력 사용으로 직접 희생되기도 하지만,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고 또한 교육 단절에 처할 수밖에 없다.
아동은 인류의 미래이므로, 이들의 희생과 고통은 사회 전체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19년 세이드더칠드런을 창설한 에글렌타인 젭 여사는 ‘모든 전쟁은 아동에 대한 전쟁’이라고 말했는데, 백 년이 지난 시점에 그 말이 다시 한번 큰 의미를 갖게 된다.
1년 반 전에 방글라데시 콕스바자에 위치한 로힝야 난민촌을 방문했다. 그곳은 2017년 이웃 국가 미얀마 내의 로힝야 대학살 사건을 계기로 수십만 명이 들어와 현재에는 1백만 명 규모의 대규모 난민촌이 형성되어 있다. 그중 절반이 18세 이하의 아동이다. 난민촌 내에는 전기나 통신 시설도 허용되지 않아, 그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전등, TV, 컴퓨터도 본 적이 없다. 교육도 난민들 중 교사 역할이 가능한 사람들이 제공하므로 초등 교육 이상은 받기가 어렵다. 필자가 Korea라는 국가를 아는지 물었을 때 아무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아이들의 표정은 밝다.
콕스바자의 로힝야 난민촌은 세이브더칠드런 인도적 지원 사업의 중요한 현장 중 하나다. 1백만에 가까운 난민들은 유엔이나 국제 NGO 등의 지원으로 생존하고 있다. 연간 총 1조 원 규모의 지원이 필요한데, 실제로는 6,500억 정도가 제공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도 매년 약 150억 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 곳곳의 인도적 사업들이 금년 들어 큰 위기에 봉착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대외 원조(이하 ODA)를 대폭 삭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원조 공여국으로서 전 세계 ODA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다. 아직 출범한지 2개월이 채 되지 않은 트럼프 행정부는 예산과 인력 감축의 첫 번째 분야로 국제개발협력 분야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개발협력처(USAID)를 국무부로 통합하고, 최근 보도에 의하면 전체 대외 원조의 90%까지 삭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인도적 지원에 있어서 미국은 전 세계의 40%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큰 타격이 예상된다.
전 세계적으로 인도적 위기가 확산하고 있는 현실에서 미국의 국제적 기여 감축은 설상가상이라고 부를 만하다. 아동을 보호하고 구제하는 사업에 매진하고 있는 많은 국제기구와 시민단체들은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미국의 공백을 유럽이나 아시아 공여국들이 메우려 노력하겠지만, 당분간은 사업 축소가 불가피할 것이다. 인도적 지원 사업이 증대되어야 하는 시점에 반대로 축소되는 셈인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확보하려는 노력은 멈출 수 없다. 우리는 어떤 특정 국가의 부정적 정책으로 세계적 근린궁핍화(beggar thy neighbor)의 악순환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 다른 나라가 대외 원조를 줄이면 우리도 줄이겠다는 식의 대응은 결국 모두에게 손해가 될 뿐이다. 세계화 시대에 있어서 인류 모두가 공동의 운명체라는 인식이 강화되어야 한다. 세계 모든 곳의 아이들이 위기 속에서도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단합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