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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함께하는 사랑방)

연령주의라는 오래된 차별

작성일
2026-08-26
조회수
67




정회옥 명지대학교 공공인재학부 정치외교학전공 교수


내게는 Anne이라는 미국인 친구가 있다. 우리는 내가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시절 처음 만났다. 낯선 시골 마을에서 가족과 떨어져 공부하던 유학 생활은 외롭고 고단했다. 그때 우연히 만난 Anne은 운전이 서툰 나를 여기저기 데려다주고,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며 따뜻하게 곁을 지켜주었다. 내가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몇 달에 걸쳐 직접 뜬 분홍색 아기 담요를 선물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담요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처음 만났을 당시 Anne은 쉰아홉 살이었고 나는 스물아홉 살이었다. 정확히 서른 살 차이였다. 한 세대를 훌쩍 뛰어넘는 나이 차이였지만, 그것이 우리가 친구가 되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이런 관계가 가능할까. 서른 살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이 서로를 아무 거리낌 없이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결코 단순한 숫자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나이는 내가 누구인지를 인식하는 방식에도 관여하고, 상대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 결정하는 기준이 되며, 때로는 좌석 하나를 양보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순간에도 개입한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이를 묻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도 결국 상대와 나 사이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나이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 속에서 한국 사회의 연령차별은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라는 이유로, 청년은 청년이라는 이유로, 중년은 중년이라는 이유로, 노인은 노인이라는 이유로 각각 다른 방식의 편견과 차별을 경험한다. 한국 사회에는 여러 세대를 동시에 겨냥하는 다층적 연령주의(ageism)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노년에 대한 차별은 특히 두드러진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노인을 가리켜 ‘연금충’, ‘할매미’, ‘틀딱충’ 같은 표현이 아무렇지 않게 사용된다. ‘노인’이라는 단어조차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어르신’, ‘시니어’, ‘선배 시민’ 같은 다른 명칭을 찾자는 논의가 이어질 정도다.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를 다루는 언론 보도도 비슷하다. 사고의 원인이 실제로 연령 때문인지 명확하지 않은데도 제목에는 ‘또’, ‘잇단’ 같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연령을 겨냥한 멸칭은 노인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중년을 지칭하는 ‘꼰대’, ‘아재’, ‘개저씨’, ‘영포티’ 같은 말이 있고, 미래 세대라며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는 아동과 청소년에게도 ‘급식충’, ‘잼민이’, ‘중2병’, ‘~린이’ 같은 표현이 붙는다. 어느 세대도 예외가 아니다.


한 사회가 사용하는 말에는 그 사회의 시선이 담긴다. 특정 연령층을 희화화하고 경멸하는 표현이 세대마다 존재한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 연령주의가 얼마나 일상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특정 나이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이미 널리 공유되고 있으며, 그것을 표현하는 일이 크게 문제시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연령차별의 깊이를 드러낸다.


더 큰 문제는 연령주의가 실제 사람들의 행동까지 바꾼다는 데 있다. 연령에 대한 고정관념은 일종의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작동할 수 있다. 어린이를 공공장소에서 통제하기 어려운 존재로 보고, 청년을 인내심이 부족하고 자기중심적인 세대로 여기며, 중년을 권위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집단으로 규정하고, 노인을 무능하고 쇠퇴한 존재로 바라본다면 사람들은 결국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에 맞춰 행동하거나 그렇게 평가받기 쉽다.


연령주의가 더욱 까다로운 이유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에 비해 차별로 잘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사자조차 자신이 겪은 일이 연령차별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어린 시절을 지나고 언젠가는 늙기 때문에 나이는 모두에게 공평한 조건이라고 여기기 쉽다. 게다가 나이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오랫동안 관습과 제도 속에 자리 잡아 차별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하지만 연령에 대한 고정관념은 거친 언어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관행과 제도로 이어진다. 광고와 각종 콘텐츠에서 나이 든 사람을 쉽게 찾아보기 어렵고, 등장하더라도 주변적 역할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카페나 식당이 ‘노키즈존’을 선언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일정한 나이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의 능력과 관계없이 직장에서 물러나야 하는 정년제도 역시 연령을 기준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제도다. 이런 관행은 다시 “그 나이에는 원래 그렇다”는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편견이 제도를 만들고, 제도가 다시 편견을 뒷받침하는 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이제는 삶을 일정한 나이 구간으로 나누고, 각 나이에 맞는 역할을 배정해온 기존의 연령분절적 사회구조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교육받을 때, 일할 때, 은퇴할 때를 획일적으로 나누고 특정 나이에 특정한 삶의 모습을 요구하는 방식은 기대수명이 길어지고 삶의 경로가 다양해진 오늘날 현실과 점점 맞지 않는다.


정책 역시 연령이라는 숫자 자체보다 개인의 필요와 능력, 상황을 더 세심하게 보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연령 블라인드(age-blind) 원칙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모든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각 연령집단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점검하는 연령 주류화도 필요하다. 정책 하나를 만들더라도 어린이, 청년, 중년, 노인에게 미칠 영향을 함께 살피고, 어느 한 연령집단이 일방적으로 불리해지지 않는지를 검토하는 방식이다.


법과 제도 역시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연령차별을 금지하는 법은 존재한다. 그러나 법에 금지 원칙을 적어두는 것과 실제 생활에서 차별을 줄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채용사이트만 살펴봐도 ‘젊고 활기찬 인재’, ‘패기 있는 지원자’, ‘에너지 넘치는 인재’처럼 특정 연령층을 사실상 선호한다고 읽힐 수 있는 표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표현 가운데 무엇이 연령차별에 해당할 수 있는지를 현장에서 판단할 구체적인 지침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다 세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채용 공고에서 ‘최근 졸업자(recent graduates)’처럼 특정 연령대를 사실상 겨냥하거나 ‘고도의 경험을 갖춘 사람(highly experienced)’처럼 다른 연령층을 간접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할 때 연령차별 가능성을 검토하도록 안내한다. 핀란드 역시 실제 사례와 표현을 통해 연령차별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한국에서도 선언적 금지를 넘어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행정지침이 더욱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세대가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늘려야 한다. 세대통합 정책을 전담하는 공적 기구를 두거나, 서로 다른 연령층이 함께 활동하는 민간 프로그램을 적극 지원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연령에 대한 감수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연령민감성은 단순히 나이 든 사람을 배려하자는 뜻이 아니다. 어린이든 청년이든 중년이든 노인이든, 각 연령층이 일상에서 어떤 불이익과 고정관념을 경험하는지 알아차리고 그것이 정당한지 질문하는 능력을 뜻한다.


나이는 한 사람의 삶 전체를 규정하는 본질적 특성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지나가는 한 시점이고, 삶의 과정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노키즈존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어린이는 머지않아 청년이 된다. 노인을 향해 ‘연금충’이라고 조롱하는 청년도 시간이 흐르면 노년을 맞는다. 바로 이 점에서 연령차별은 특별한 역설을 품고 있다.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 가하는 차별이 미래의 나를 향해 되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필요한 변화는 거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몇 살인지 먼저 묻기보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고, 서른 살 차이가 나더라도 마음이 맞으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사회. Anne과 나의 우정이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흔한 풍경이 되는 사회. 그런 사회가 연령주의에서 한 걸음 벗어난 사회일 것이다.


*이 글의 일부 논의는 필자의 저서 『나이 묻는 사회』에서 다룬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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