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준비청년의 ‘진짜 자립’을 묻다
- 작성일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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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식 사단법인 온기 대표
“5년이 끝난 뒤에도 나는 잘 살아갈 수 있을까.”온기우편함에 도착한 한 자립준비청년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자립준비청년이 된 지 3년. 앞으로 2년이면 지원도 끝난다. 처음에는 경제적으로 혼자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더 큰 두려움이 생겼다.
“사실 제가 두려운 건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혼자인 삶을 살아가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언젠가 자신도 가족을 만들 수 있을지, 좋은 배우자와 부모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자립준비청년을 바라보는 방식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립준비청년에게 무엇을 얼마나 지원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왔다. 이제는 ‘어떤 삶을 자립이라 부를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1. 한국의 자립준비청년, 지원은 늘었지만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한국의 자립준비청년 지원은 빠르게 확대됐다. 현재 보호종료 후 5년간 월 50만 원의 자립수당이 지급되고, 지자체별 자립정착금도 1,000만~2,000만 원 수준이다. 디딤씨앗통장, 주거·교육·취업·의료·심리 지원과 함께 전국 17개 시·도의 자립지원전담기관도 운영되고 있다.
지표도 개선됐다. 2023년 자립지원 실태조사에는 보호종료 후 5년 이내 자립준비청년 9,670명 중 5,032명이 참여했다.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 5.6점, 평생 한 번이라도 자살을 생각한 경험은 46.5%, 최근 1년간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경험은 18.3%였다. 자살을 생각한 주된 이유는 우울증 등 정신과적 문제 30.7%, 경제적 문제 28.7%, 가정생활 문제 12.3%, 학업·취업 문제 7.3% 순이었다. 취업자 비율은 52.4%로 2020년보다 10.2%포인트 상승했지만 20~29세 청년의 61.3%보다 낮았다. 공공임대주택 지원률도 2022~2024년 평균 12.0%에 그쳤다.
제도와 지표는 분명 개선됐다. 그러나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삶의 어려움은 남아 있다. 왜 지원이 늘어도 청년들은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가.
2. 숫자 뒤에 있던 마음들
- 온기우편함 편지 500통이 보여준 또 다른 자립의 욕구
온기우편함에 도착한 자립준비청년의 고민편지 500통에는 정책의 숫자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삶의 고민이 담겨 있었다. 편지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욕구를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눈에 띄는 것은 경제·주거보다 관계·소속·정서·미래에 관한 고민이 폭넓게 반복된다는 점이다. 경제적 안정은 여전히 자립의 조건이지만,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결핍이 존재한다.
가장 강한 것은 관계의 지속성에 대한 불안이었다. 한 청년은 “계속 버려질까봐 두렵다”고 했다. 상담자가 먼저 자신을 떠날까 봐 두려워 스스로 상담을 끝냈고,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내가 널 떠나지 않을게”였다. 또 다른 청년은 지금 직장에서 행복하지만 과거의 배신 경험 때문에 “이 행복이 언제 깨질지” 불안하다고 했다. 이들에게 관계의 문제는 사람을 사귀는 기술의 부족이 아니다. 관계가 언제든 끝날 수 있다는 경험 때문에 관계를 안전하게 믿기 어려운 것이다.
미래에 대한 고민도 같다. “남들은 뭔가 하고 있는데 나만 멈춰 있는 것 같다.” “무엇을 결정할 때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린다.” “청년이 아닌 나이가 되었을 때 온전히 내 힘으로 살 수 있을까.” 이들에게 필요한 진로지원은 정보만이 아니다. 선택의 순간 함께 고민하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관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하나의 욕구가 있다. “나도 평범하게 살 수 있을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취업하고, 사람들과 지내고, 가족을 만들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결국 이들이 원하는 것은 더 많은 물품이나 서비스만이 아니다. 조금 더 살아볼 수 있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곁을 지켜줄 사람이다. 자립준비청년이 요청하는 것은 결국 ‘시간의 유예’와 ‘인간적 연결’에 가깝다.
3. 해외에서는 자립을 어떻게 바라볼까
- ‘지원의 시간’과 ‘관계의 지속’
해외에서는 이 문제에 두 가지 방식으로 답하고 있다. 필요한 만큼 지원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 그리고 보호가 끝나도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다.
일본: 자립의 ‘시간’을 연장하다
일본은 2022년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사회적 보호를 경험한 청년에 대한 지원 연령과 범위를 확대했다. 자립생활원조사업을 통해 주거·생활지도·취업 등을 지원하고, 필요하면 기존 연령 기준을 넘어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2024년부터는 사회적 양육 경험자의 고립·고독을 예방하기 위한 자립지원 거점도 운영하고 있다. 2024년 10월 기준 일본의 자립원조홈은 369개소, 정원 2,345명, 현원 1,465명이다. 일본의 핵심은 자립을 특정 연령에 완성되는 상태가 아니라 필요한 만큼 시간이 필요한 과정으로 본다는 데 있다.
영국: 자립의 ‘관계’를 이어가다
영국의 ‘Staying Put’은 18세가 된 뒤에도 위탁부모와 합의하면 기존 가정에 21세까지 머물 수 있도록 한다. 2025년 기준 18세에 보호가 종료된 청년의 62%가 18세 생일 3개월 후에도 기존 위탁부모와 함께 살았고, 19~20세에서도 33%가 계속 거주했다.
영국은 여기서 더 나아가 2026년, ‘Enduring Relationships’을 정책의 핵심 원칙으로 제시했다. 자립준비청년에게는 서비스뿐 아니라 안정과 소속감을 주는 지속적인 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Family Finding’을 통해 약 2,000명이 중요한 관계를 다시 찾았으며, 참여자들은 평균 2.2명의 의미 있는 관계를 추가로 발견했다.
세 나라의 차이는 분명하다. 한국은 ‘무엇을 지원할 것인가’를 확대하고, 일본은 ‘얼마나 오래 지원할 것인가’를 묻고, 영국은 ‘누가 계속 곁에 있을 것인가’를 묻는다.
4. ‘진짜 자립’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
첫째, ‘5년’보다 청년의 자립 속도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
“앞으로 2년이면 지원이 끝납니다. 그 이후에도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자립수당 5년은 행정적 기준일 뿐, 한 사람의 자립이 완성되는 시간은 아니다. 취업이나 주거가 안정되지 않았거나 관계가 끊긴 청년에게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일본의 사례처럼 청년의 실제 자립 정도에 따라 지원을 연장하거나 다음 단계로 연결하는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둘째, 서비스의 연결을 넘어 관계의 지속을 지원해야 한다. “내가 널 떠나지 않을게.” 이 말은 자립준비청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비스가 연결되는 것과 나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다르다. 자립지원전담인력, 멘토, 시설 종사자, 위탁부모, 교사, 지역사회의 어른 등 한 사람의 삶을 기억하고 중요한 순간에 함께 고민하는 관계를 지원체계 안에 만들어야 한다. 영국의 Personal Adviser와 Family Finding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셋째, 자립을 ‘혼자 살아가는 상태’에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능력’으로 다시 정의해야 한다.
누구도 완전히 혼자 살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도움을 요청하고, 고민을 나누고, 서로 돌보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자립준비청년에게만 ‘혼자 살아가는 것’을 자립의 기준으로 요구할 수 있을까.
자립은 도움을 받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고 관계 속에서 자신의 삶을 선택하며, 언젠가는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온기우편함의 한 청년은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혼자인 삶이 두렵다.” 이 질문에 우리가 건넬 대답은 더 많은 지원제도의 목록만이어서는 안 된다. 자립준비청년에게 필요한 사회는 혼자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사회를 넘어, 혼자가 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여야 한다.

